우리가 어렸을 때 아인슈타인은 뇌세포를 평생 10~15% 정도 사용해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5~8%보다 약 두 배는 더 사용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었다. 그에 대한 어떤 근거도 없이....
나이가 들면서 결코 저 말은 진실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용도로 사고를 하던 머리는 거의 모든 뇌세포를 동원한다. (물론 주로 많이 쓰는 부위들은 따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뇌세포는 사용하고, 어떤 뇌세포는 사용하지 않았다거나 어떤 뇌세포를 어제 사용했으니 이제 그만 저장했다거나 하는 말은 맞지 않다.
아인슈타인이 평생 뇌를 10% 사용했다면 일반인도 똑같이 뇌를 10% 사용하고 죽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잘 알려졌다시피 기억력이 지독히도 나빴고,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단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이해력을 엄청난 수준까지 끌어올렸음이 분명하다.
(암기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대우해주는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확실히 아인슈타인이 불리할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류층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8살이 될때까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언어감각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당시 취리히 공대 학생이던 삼촌에게서 피타고라스를 소개받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주일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했습니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기하학을 배운적도 없었던 말 그대로의 초등학생이었었습니다.
리차드 파인만은 그리 빈곤하지는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파인만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무척 힘들게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벌어 먹어야 했지요... 창의성이 매우 뛰어나서 어렸을 때 여러 발명품을 제작했으나 아직 지식이 미비한 관계로 성공한 것은 단 한개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파인만은 언어감각이 굉장히 좋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강연은 전설적인 강연이 되곤 했지요.
아인슈타인은 수학적 능력이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나 막상 자신의 이론을 위한 수학계산을 할때에는 혼자서 할 수 없을 정도로 수학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상력은 매우 뛰어난 편이어서 "사고실험"을 즐겨 하곤 했었습니다.
파인만은 수학에 어려서부터 조예가 깊어 꽤 깊은 수학과 수학까지 공부했습니다. 수학을 잘 한다는 학자들이 몇달동안 끙끙거리면서 계산하던 것을 30분만에 계산해 내곤 했지요. 그는 자신만의 수학을 전개했는데, 그것을 파인만 적분론이라고 부릅니다.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제가 어떤 글에선가 공부하려고 도전했다가 실패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
그렇다면 아인슈타인과 파인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인슈타인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실직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 생활은 첫번째 부인과 결혼하는데 위기로 작용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시간도 몇년이나 됐지요. 그리고 취직한 곳이 스위스 특허청이었습니다.
파인만도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실직자 생활을 했습니다. 대략 6개월 정도일 겁니다. 그리고는 어떤 도금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했습니다. 이 도금공장에서 군대에 가기 전까지 일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종 군수용 기계를 만드는 곳에서 연구를 2년간 한 것이 파인만의 군생활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공통점을 다 들춰내려면 굉장히 많은 분량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파인만은 어렸을 때부터 모두다 산업현장에서, 집 근처에서, 혹은 집에서 이것저것 기기들을 만들고, 구경하고, 그것들을 갖고 노는 것을 많이많이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보통 남자아이들은 기계를 만들고, 갖고 도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것은 장난감같은 간단한 것들에 국한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저런 상황하에서 진짜 기기들을 접하면서 점점 더 흥미를 느끼데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위험하기는 하겠지요. ㅎㅎㅎㅎ
아인슈타인에게는 좋은 은인이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이 독일에서 스위스로 도망쳤을 때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분이 있었지요.(누군지는 잘 생각이 안 나네요.) 반면 파인만에게는 고등학교때 수학시간에 흥미를 잃고 있자(파인만이 수학의 천재인데 수업시간이 흥미가 있었을리 만무하죠....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없는 것과는 크게 틀립니다. ^^;) 파인만의 수준에 맞는 매우 어려운 수학책을 공부하기를 권해준 수학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아인슈타인과 파인만의 공통점은 매우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이 두 사람이 천재적인 물리학자가 되는데는 이 두 공통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ps. 음..... 두 사람의 여성편력도 닮았군요. ^^;
전 이제 제가 스스로 공부해서 물리학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공부하기엔 너무 늦었지요. 공부해서 박사가 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도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 정도는 아니지만 뛰어난 과학적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아니 있었다고 믿습니다.) 단지 그 재능을 일깨우지 못했을 뿐입니다. 앞으로 제가 죽기 전에 정말 뛰어난 아이를 발견해서 그 재능을 꽃피워주고 싶습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요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행력 (Execution)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완벽하게 증명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연구가 필요했다. 그의 위대함은 천재적 직관보다는 집요하게 매달린 그 실행력에 있다. 텔레비전과 함께 성장한 현대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곧 찬란한 결실로 이어진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아이디어를 계발하고 입증하기 위해 엄격하고 끈질긴 작업과정을 거친 후에야 지적 도전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다.
제가 볼 때 이 이야기는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전자기학을 바탕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을 때에는 스위스의 특허청에서 쉬엄쉬엄 일하면서였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린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때에는 그의 부인의 도움이 엄청 많았습니다. 부인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정리하고, 논문으로 만들어 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죠.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은 당대의 최고 물리학자였던 보어에 의해서 일약 스타과학자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덕분에 후일 연구를 편히 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그 당시 보어만이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발견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천재는 천재만이 알아보는 것인가???)
그 후 아인슈타인은 10년 동안 수많은 모델을 가정해서 전자기학을 바탕으로 한 특수 상대성 이론에 중력을 넣는 연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도전은 어이없이 실패하게 되죠.
그 후 10년이 흘러 1915년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자신이 만든 새로운 모델이 뉴턴의 중력모델을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이때는 두 번째 부인과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헌신적 내조를 했던 첫 번째 부인을 차버리고, 재혼한 것이었죠. ^^)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후 불과 몇 일만에 완벽한 증명(?)까지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어에게 개인적인 편지로 이 사실을 알리게 됐죠. (당시까지는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가장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몇 년 후 하이젠베르그가 불확정성 원리를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 둘은 아주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자.......... 위에서 나왔던 이야기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게 된 것은 10년간 끊임없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맞는 절반의 부분입니다. 반면 그의 마지막 아이디어는 불과 수 분~수 시간 만에 작성되었고, 증명까지는 불과 몇 일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또한 틀린 절반의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뛰어난 생각을 하게 될 때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뛰어난 생각을 하는 시간과 증명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타고난 사람만이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구요.
저는 과감히 주장합니다. 뛰어난 결과는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좋은 사회여건 속에서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노력을 한 뒤에라야 순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후일담으로....... 1. 아인슈타인과 보어와 굉장히 친하게 지낸 네델란드의 한 물리학자는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보어와 아인슈타인이 심하게 다투게 되자 둘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살을 해 버렸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죠. ^^)
2. 보어가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알아본 천재라고 했는데, 그는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근무할 때에 이미 물리학자로서의 모든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둘의 나이차이가 별로 안 난다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친구로 지낼 수 있었겠죠. ^^) 노벨물리학상도 보어가 1920년, 아인슈타인이 1921년에 받았습니다. (매년 노벨물리학상 후보에 아인슈타인을 추천했던 이도 역시 보어였답니다.) 1920년에는 전쟁으로 노벨상이 시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보어가 상을 시상한 것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때입니다.
3. 아인슈타인의 공식적인 자녀는 모두 세 명(3남)이 있었는데, 장남과 3남은 MIT공대 교수로 재직했었고, 둘째 아들은 정신병원에 갇혀 평생을 살았습니다.
4. E = mc2이란 유명한 에너지-질량 등가의 공식은 사실 상대성이론으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닙니다. 최초로 이 식이 등장한 것은 라듐 방사성동위원소 붕괴시 발생되는 질량결손과 에너지 발생량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이 도출해낸 논문에서였습니다. 그 논문은 불과 3페이지였다고 합니다. 이 공식이 없었다면 상대성이론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기에, 아인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논문은 이 논문이 아닐지..... 그냥 개인적 생각입니다.
6. 레이저 발명을 가지고 80년대에 MIT공대의 한 그룹과 어떤 개인이 소송을 해서 어떤 개인이 승소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저를 처음 이론적으로 예언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랍니다. 놀랍죠??? 발명특허권은 아인슈타인에게 줘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들뜬 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서술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전자기파가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했었던 것입니다.
뱀발: 이 글을 옮기면서 살펴보니 과학글인지 교육글인지 어중간한 위치에 있네요. ^^ 원본 글이 리더십센터 newsletter에서 나왔던 글이라서 교육글 쪽으로 위치시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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