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문과 인터넷 뉴스의 한 모퉁이를 필수적으로 장식하던 기사가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의 『즐거운 사라』와 관련된 것이었다. 뉴스가 너무 많으니까 뉴스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검색해 보시길 바라고.....
이 책은 90년대 초반에 음란물 판정으로 한참 말이 많았고, 그래서 94년 마광수 교수는 교수직에서 쫒겨나서 『사라에 대한 변명』이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었다.
『즐거운 사라 』가 마광수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올 봄쯤이었다.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었고,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지라 한 번 읽어보고 싶었으며, 그래서 헌책방을 뒤져서 읽어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마광수 교수가 손수 스캔한 이미지들을 올려주셨기 때문에 나는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내 블로그에는 당시에 『즐거운 사라 』를 타자치던 기록이 남아있다. 1장을 채 다 쳐 넣지도 못하고 나는 실증을 느꼈다. 문학과 야설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즐거운 사라 』는 읽는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흥미와 재미와 감동과 쾌감(?)을 줄까?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1장은 너무 재미있고, 과연 마 교수를 견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만 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1장을 읽다가 뒤로 넘겨보았는데, 전체를 다 읽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야하다거나 문제삼을만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야한 소설"만으로 따지면 『즐거운 사라 』보다 더 야한 소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의 남자』1(김한길 씀)라는 소설도 『즐거운 사라 』만큼이나 야하지 않았나? 더군다나 『여자의 남자』의 경우는 대통령인 여자(유부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특권을 사용해서 남자와 같이 살게 해 준다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오히려 문제삼아야 한다면 『여자의 남자』이어야지 『즐거운 사라 』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는 어떤것일까?
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보여주면 무조건 음란물로 규정하여 획일적으로 단속을 한다. 규제는 때로는 문화의 발전을 촉진한다. 초기 헐리웃 영화들이 경우에 성에 대한 무분별한 표현이 이뤄지다가 스스로의 규제에 합의했고, 이는 에로시즘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영화를 이끌고 갔었던 적도 없지 않다. 이런 규제가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줄곧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적 단속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이을 수밖에 없다.
『즐거운 사라 』가 어떤 책인지 궁금해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
우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어떤 책인지는 쉽게 찾아질 수 있다. 그 다음으로 clubbox나 프루나같은 공유 프로그램에서 검색을 한다. 네티즌 사이에 XXX로 정평이 나 있는 유명한 작품의 경우에는 몇 건씩 검색되어 나오는게 통례인데 『즐거운 사라 』는 한 건도 검색되어 나오지 않는다. 마광수 교수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도 『사랑의 다른 기술』이라는 소설 한 권만 검색되어 나올 뿐이다.
네티즌들에게는 『즐거운 사라 』라는 책 자체가 관심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도 된다. 즐거운 사라가 전해줄 말초적 감각의 흥분은 이미 야동과 야설로 넘처나는 인터넷에서는 너무 흔하다못해 관심조차 받을 거리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로 관심을 받기에는 너무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지지 못하게 되기까지는 물론 90년대 초반의 광풍이 주요한 원인이 됐을 터~
사실 정상적으로 『즐거운 사라 』가 출판되고 있다면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요금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할테고, 성인들이 주로 접하는 훌륭한 문학으로 남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재떨이 부인의 사랑』같은 소설처럼....
성인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개인적인 문제만 따져볼 때 성인들도 통제가 잘 되지 않는 마약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성인들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性)"이란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성을 집단적인 것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변태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가보더라... 영화 <매트릭스3>에서도 이상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성은 마약같은 개인으로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것인가? 누구나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가 유교의 영향이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성에 대한 통제가 강했었다. 이는 고려 말기~조선 초기부터 우리나라의 경향으로 자리잡은 것인데, 그 결과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떤 문화가 생겨났는가? '강간율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가 이 문화로부터 생겨나지 않았을까?
강간율이 높았던 것은 최근의 경향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더 많은 강간이 있었을테고, 그래서 여자에게 정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문화가 생겨났을 것이다. 반면 남자들에게는 어디 가서 여자와 관계 한 번 못해보면 바보라는 식의 인식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는 사실 길을 지나가던 여자를 강제로 잡아놓고 강간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어떻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강간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 사회였다면, 불륜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였다면 역설적으로 정조 개념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강간율이 높은 것은 성적인 자율판단 능력을 기를 기회가 없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금지하는 사회분위기가 오히려 악효과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문학을 문학으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문학 이외의 목적성을 부여할 때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우중의 『세상은 넓고 튈곳도 많다』같은 책일 것이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같은 노래도 당시 전두환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띄워주기한 노래가 아닌가?
금지를 시킨다면 사회에 불순한 의도로 씌어진 이런 책이나 노래들이 금지가 되어야지, 순수한 문학작품에 성적인 묘사가 있다고 금지시키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디까지가 음란물인가?
일반적인 성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음란물이 될 수 있을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미 이전의 음란물이라는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 됐다. 음란물이라는 말의 개념과 사회적 통념은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음란물이라는 틀에 맞춰서 규제와 통제를 하려는 생각은 진공관 라디오같은 골동품에 맞춰서 mp3p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규제는 필요하다. mp3p를 규제하려면 mp3p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필요로 하듯이 음란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터넷의 세계가 시작된 다음 첫 세대인 우리 세대에서는 모든 개념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50년쯤 후의 세대들의 가치관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테니까....!!
참고 : [기사/인터뷰] 마광수 “절망하고 있다” 경찰조사 후 심경고백
추가 : 야동과 야한 영화의 경계는 어디인가?
나는 야동과 야한 영화를 이렇게 구분한다. 중간 아무 곳이나 보기 시작해서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야한 영화이고, 내용이 이해가 되면 야동이다. 그래서 전 옛날에 말이 많던 영화 <거짓말>도 야동으로 분류합니다. 반면 간혹 야동 중에서도 영화인 것들이 있더라구요. ㅎㅎㅎ
이 책은 90년대 초반에 음란물 판정으로 한참 말이 많았고, 그래서 94년 마광수 교수는 교수직에서 쫒겨나서 『사라에 대한 변명』이라는 책을 내놓기도 했었다.
『즐거운 사라 』가 마광수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던 것을 발견한 것은 올 봄쯤이었다. 아직 읽어보지도 못했었고,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지라 한 번 읽어보고 싶었으며, 그래서 헌책방을 뒤져서 읽어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마광수 교수가 손수 스캔한 이미지들을 올려주셨기 때문에 나는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내 블로그에는 당시에 『즐거운 사라 』를 타자치던 기록이 남아있다. 1장을 채 다 쳐 넣지도 못하고 나는 실증을 느꼈다. 문학과 야설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즐거운 사라 』는 읽는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흥미와 재미와 감동과 쾌감(?)을 줄까?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1장은 너무 재미있고, 과연 마 교수를 견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만 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1장을 읽다가 뒤로 넘겨보았는데, 전체를 다 읽지 않아서 그런지 별로 야하다거나 문제삼을만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야한 소설"만으로 따지면 『즐거운 사라 』보다 더 야한 소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의 남자』1(김한길 씀)라는 소설도 『즐거운 사라 』만큼이나 야하지 않았나? 더군다나 『여자의 남자』의 경우는 대통령인 여자(유부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특권을 사용해서 남자와 같이 살게 해 준다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오히려 문제삼아야 한다면 『여자의 남자』이어야지 『즐거운 사라 』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문제는 어떤것일까?
성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보여주면 무조건 음란물로 규정하여 획일적으로 단속을 한다. 규제는 때로는 문화의 발전을 촉진한다. 초기 헐리웃 영화들이 경우에 성에 대한 무분별한 표현이 이뤄지다가 스스로의 규제에 합의했고, 이는 에로시즘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영화를 이끌고 갔었던 적도 없지 않다. 이런 규제가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비단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줄곧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적 단속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이을 수밖에 없다.
『즐거운 사라 』가 어떤 책인지 궁금해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
우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면 어떤 책인지는 쉽게 찾아질 수 있다. 그 다음으로 clubbox나 프루나같은 공유 프로그램에서 검색을 한다. 네티즌 사이에 XXX로 정평이 나 있는 유명한 작품의 경우에는 몇 건씩 검색되어 나오는게 통례인데 『즐거운 사라 』는 한 건도 검색되어 나오지 않는다. 마광수 교수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도 『사랑의 다른 기술』이라는 소설 한 권만 검색되어 나올 뿐이다.
네티즌들에게는 『즐거운 사라 』라는 책 자체가 관심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고 봐도 된다. 즐거운 사라가 전해줄 말초적 감각의 흥분은 이미 야동과 야설로 넘처나는 인터넷에서는 너무 흔하다못해 관심조차 받을 거리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로 관심을 받기에는 너무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지지 못하게 되기까지는 물론 90년대 초반의 광풍이 주요한 원인이 됐을 터~
사실 정상적으로 『즐거운 사라 』가 출판되고 있다면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요금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할테고, 성인들이 주로 접하는 훌륭한 문학으로 남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재떨이 부인의 사랑』같은 소설처럼....
성인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개인적인 문제만 따져볼 때 성인들도 통제가 잘 되지 않는 마약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성인들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性)"이란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 성을 집단적인 것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변태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가보더라... 영화 <매트릭스3>에서도 이상한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성은 마약같은 개인으로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것인가? 누구나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가 유교의 영향이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성에 대한 통제가 강했었다. 이는 고려 말기~조선 초기부터 우리나라의 경향으로 자리잡은 것인데, 그 결과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떤 문화가 생겨났는가? '강간율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가 이 문화로부터 생겨나지 않았을까?
강간율이 높았던 것은 최근의 경향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더 많은 강간이 있었을테고, 그래서 여자에게 정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문화가 생겨났을 것이다. 반면 남자들에게는 어디 가서 여자와 관계 한 번 못해보면 바보라는 식의 인식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조선시대에는 사실 길을 지나가던 여자를 강제로 잡아놓고 강간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어떻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강간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 사회였다면, 불륜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였다면 역설적으로 정조 개념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강간율이 높은 것은 성적인 자율판단 능력을 기를 기회가 없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금지하는 사회분위기가 오히려 악효과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문학을 문학으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문학 이외의 목적성을 부여할 때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우중의 『세상은 넓고 튈곳도 많다』같은 책일 것이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같은 노래도 당시 전두환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띄워주기한 노래가 아닌가?
금지를 시킨다면 사회에 불순한 의도로 씌어진 이런 책이나 노래들이 금지가 되어야지, 순수한 문학작품에 성적인 묘사가 있다고 금지시키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디까지가 음란물인가?
일반적인 성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음란물이 될 수 있을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미 이전의 음란물이라는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 됐다. 음란물이라는 말의 개념과 사회적 통념은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음란물이라는 틀에 맞춰서 규제와 통제를 하려는 생각은 진공관 라디오같은 골동품에 맞춰서 mp3p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규제는 필요하다. mp3p를 규제하려면 mp3p에 대한 새로운 규칙을 필요로 하듯이 음란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인터넷의 세계가 시작된 다음 첫 세대인 우리 세대에서는 모든 개념을 새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50년쯤 후의 세대들의 가치관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테니까....!!
참고 : [기사/인터뷰] 마광수 “절망하고 있다” 경찰조사 후 심경고백
추가 : 야동과 야한 영화의 경계는 어디인가?
나는 야동과 야한 영화를 이렇게 구분한다. 중간 아무 곳이나 보기 시작해서 내용이 이해가 안 되면 야한 영화이고, 내용이 이해가 되면 야동이다. 그래서 전 옛날에 말이 많던 영화 <거짓말>도 야동으로 분류합니다. 반면 간혹 야동 중에서도 영화인 것들이 있더라구요. ㅎㅎㅎ
- 『여자의 남자』는 김한길에 의해 씌어진 소설로 대통령의 딸이 결혼 전에 사귀던 기자출신의 남자와 만나 몰래사랑을 하다가 결국은 둘이 도망가서 산다는 이야기다. 노골적인 성적 묘사나 대통령이 자신의 딸의 행복을 위해서 둘을 몰래 피신시켜 살게끔 해 준다는 파격적인 결론이 눈에 띄던 이 소설은 TV드라마화 되었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성적 묘사가 모두 생략되고, 결론에 남자가 총에 맞아 죽는 것으로 처리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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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 입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김홍신은 『인간시장』이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었지요. 제가 착각했네요.
고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외설'과 '예술'은 노엄 촘스키 정도의 '세계적 지성'도 구분 못 할거란 생각입니다-_-;
움베르트 에코는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는 경우에, 그 지루하고, 불필요한 경로를 모두 보여주면 포르노,라고 하던데요. ^^; 그래야 시간(런닝타임)을 때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그다지 유용한 표준법은 아니란 생각도 듭니다. -_-;).
대법원영감님들이야... 워낙에 고상하신 양반들이라서.. ㅋ
시대 변화에 그다지 민감하고 싶지 않은 산신령들 같습니다.
물론 사안마다보면.. 정치적으론 꽤 민감하셨던 것도 같긴 하지만요.
개인적으로.. 마교수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마교수를 탄압(이건 정말 탄압이라고 생각하는데요)하는 그 갖잖은 국가공권력, 사회통념이라는 '기만'적 수사들은 정말 짜증 만빵이네요. 마교수 화이팅입니다. -_-;
아, 그런데 이런 일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 그래도 좀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 어떤 계기로 구실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드네요.
:)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야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고.......
그냥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씀드릴 뿐이죠. ^^
뭐 선구자들은 항상 피곤하고 피해를 많이 받을 뿐이죠. ^^;;;;;
작은인장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님의 글과 논리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강간률 세계최고는 아닙니다.잘못된 이런 주장이 널리 퍼져 있는걸 보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하수도 문화가 강간률을 줄인다는데는 절대 동의합니다만......
음....
OECD 국가중에서 최고였었나요?
뭐 어떤 기준으로 따졌을 때 최고라고 했었는데, 정확한 건 망각의 강을 건너버렸네요. 죄송~~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