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이명박 후보의 방명록 맞춤법 비판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맞춤법을 잘 알고, 사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에 끼워 맞춰서 맞춤법 검사기에 오류하나 지적되지 않도록 사용하는 국어만이 최선의 국어사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다르다'와 '틀리다'의 혼용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언론의 기사, 블로그 포스트, TV의 인터뷰 장면 등에서 '다르다'를 써야 한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틀리다'를 써버리면 온갖 비판이 가해지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버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더군다나 ‘틀리다’를 ‘다르다’의 잘못된 사용이라고 지적해 놓은 것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틀리다와 ‘다르다’의 의미 자체에 공통된 부분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쓰고, 대다수는 그것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1 의미를 혼동하는 일이 없다.2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르다와 동일시하여 쓰고 있는 부분에 대한 '틀리다'의 사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국어사전이며, 내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이나 웹의 국어사전에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3
※ 월인석보가 작성되던 조선시대에도 틀리다를 다르다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항상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함으로서 그 유용성과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하지 않는 언어는 아주 오래전에 사멸된 히브리어 같은 언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언어는 항상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언어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언어의 정보를 조사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 사전이다.
다시 말하자면 국어사전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국어사전에서 나와 있는 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분명한 것은 '국어사전'이란 것은 우리의 언어를 조사해서 정리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현재 국어의 모습을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어사전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어학자가 언어를 잘못 정리해 놓거나 누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대표적인 예가 누구나가 사용하는 '석식'이란 단어지 않을까? 약 50여 년 전에 처음 국어사전을 만들면서 실수로 석식이란 단어를 누락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석식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는 석식이란 단어를 사용하며, 석식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 틀렸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생각 외로 이러한 단어들은 맞춤법 검사를 해보면 꽤 많다. 따라서 국어사전을 그대로 사용하는 국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도 안된다. 위 예에서처럼 누락에 의한 국어사전의 오류도 문제가 되지만, 국어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국어사전도 문제가 된다.
국어사전에 따르는 언어생활을 하지 않음으로서 사회적/언어적인 의미에서의 혼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당장의 걱정거리일 뿐이다. '장애자/장애인/장애우' 와 같이 언어를 인위적으로 바꾼다고 사회가 혼란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며 사회 구성원의 생각이 바뀌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인식이 바뀌듯.... 언어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오히려 국어사전이 우리 언어생활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짜장면'과 '개발새발'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국어학자들이 이 두 단어를 국어사전에 등재할 때 일반 국민들이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인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개발새발을 '괴발개발'로 등재한 것은 현재의 국어를 무시하고 최소한 십수 년 전의 사멸한 표현 언어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활에서는 짜장면을 사용해야 하는지, 자장면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개발새발의 경우는 '괴'라는 고양이를 뜻하는 단어가 표준어에서 사멸하면서 민중들이 '개발새발'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괴'가 강원도와 경상도에서만 사투리로 남아있고, 표준어에서는 일부 속담에서만 살아남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어학자들이 이미 사멸한 단어를 다시 등장시킴으로서 언어의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미 국민들의 90% 이상이 불편없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틀렸다고 원래대로 되돌리는 이러한 결론이 국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것일까?
언어가 직접적으로 변한 경우도 존재한다.
'삐지다'란 단어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에/
에게)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다.'라는 뜻의 저 단어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뜻의 단어는 '삐치다'에 기록되어 있다. 국어사전을 만들 때의 표기가 현재 국어에서 변했지만 국어사전에 이를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변화도 어느 누구도 잘못됐다고 보지 않는다.
언어의 변화가 일부 불합리한 방향4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대중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 불합리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결국은 새로운 국어로 바꾸어 나간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너무 급격히 변하거나 언어적인 체계 자체가 무너지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구성원들간의 소통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므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5
극단적으로 살펴보자면, 만약에 우리가 변화하기 이전의 국어를 절대적으로 아름답고 우리 언어생활에서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이상형이라면 우리는 현대국어를 버리고 옛 국어 즉 15c의 국어를 다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언어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15c 국어에 나타나고 있음을 고등학교 국어를 배움으로서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15c의 아름다운 국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다르다'와 '틀리다'를 엄격히 구분하자는 수 년, 수십 년 전의 우리의 국어로 되돌아가자고 하지는 않아야 한다. (더군다나 네이버의 국어사전에 따르면 《월인석보》에서부터 '틀리다'를 '다르다'로 써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되짚어보면 국어학자들이 국어사전을 만들면서 '틀리다'의 뜻을 정리할 때 '다르다'에 해당하는 의미를 누락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갖어야 할 의문은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 혼용이 정당한 변화이냐 기존 언어체계를 허무는 변화냐를 따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전 국민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용해서 사용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고, 이 혼용은 사실상 수백 년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변화이므로 피해야 할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만약 국어사전에 혼용되는 부분이 실리게 되면 그때도 다르다와 틀리다를 완벽하게 구분해서 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이미 다르다와 틀리다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프랑스는 자기들의 언어가 너무 괴팍하기에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오랜 시간동안 인위적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바뀌어가는 것조차 수용하지 못할까? 그것은 너무 경직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상이 나의 국어사용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다. 국어생활을 너무 사전에 억매여 따지면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어색하게 말을 하면 '국어책 읽듯이'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가 학창시절에 국어책은 이미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배웠던 국어책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말이 아니라 국어책(국어사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와 '틀리다'라는 말의 뜻이 겹쳐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일 것이다.
ps.
- ‘다르다’를 ‘틀리다’의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지만 ‘틀리다’를 ‘다르다’의 뜻으로 쓰는 경우는 꾸준히 있어왔다. 이렇게 '틀리다'의 쓰임새의 혼용은 이미 사용자들이 혼동하지 않는 수준이다. [본문으로]
- 다르다와 틀리다의 의미의 혼동이 없는 이유는 '틀리다'를 사전적인 뜻으로 사용할 때는 완전자동사로 사용하며, '다르다'의 뜻으로 쓸 때는 불완전자동사로 사용하여 문법적으로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넌 틀려"와 "넌 나와 틀려"에서처럼…….
[본문으로] - 아마 이 주장의 시작은 어떤 장애인 캠페인에서부터인 것 같다.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한 논쟁에 대한 글을 찾아보면 2004년 이전의 글을 찾을 수가 없다. [본문으로]
- 옛날에는 언어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보기엔 너무 황당한 변화들을 우리가 이미 수용한 전례가 있다. '파리'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파리의 어원은 다들 아시겠지만 '팔'(아래아를 사용한 '팔'이다.)이다. 팔이 파리가 되는 과정은 황당하게도 주격조사 'ㅣ'가 붙어 '파리'로 표기된 것이 그대로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경우다. [본문으로]
- 이미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몇 차례 겪은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몽고침략기(몽골언어에 의한 큰 영향),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사회적 변화에 의한 언어적 혼란), 일제침략기(일본어에 의한 큰 영향), 그리고 한국전쟁(영어에 의한 큰 영향)이라는 역사적 대 전환기를 맞이하여 변화한 국어라고 들 수 있다. [본문으로]
'생각 > 긴~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HelpYourself 님께] 불법다운로드와 리포트 장사에 대해서... (4) | 2007/09/11 |
|---|---|
| 미원에 대한 온갖 생각들.... (6) | 2007/09/11 |
| 가수들의 염려스런 리메이크 앨범 붐 (3) | 2007/09/11 |
| 아름다운 우리 몸 (4) | 2007/09/08 |
| 올바른 국어 사용에 대해서 (4) | 2007/09/07 |
| 결정의 자유와 힘 (12) | 2007/09/05 |
| 생산량은 노동량과 비례하지 않는다. (11) | 2007/09/05 |
| 소익부 노익빈(少益富 老益貧) (1) | 2007/09/03 |
| 이명박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1) | 2007/09/01 |
| 도리(道理) (0) | 2007/08/2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