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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크게 멀리보고 키워라 이시형 지음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 "저 되기 반, 키우기 반이다."가 인상적인 책이다. |
- p.33을 읽다가...
인간의 능력은 대단히 평등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은 같은 능력 혹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1 하지만 인간의 모습이 제각기 다르듯이 능력도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결국 인간이 어떤 능력을 갖고 발전하느냐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뛰어난 능력을 발견해 줄 수 있는 (정신적) 스승과 교육시키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보통 천재들은 그 사람의 능력이 공부와 연관이 있을 때 많이 발견된다. 일반인들도 뛰어난 부분이 당연히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뛰어난 점이 공부와 상관없는 생업/취미 등의 부분과 관련 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한 분야에 천재성이 있다면 그 방면의 문화가 급격히 발전하여 대부분의 천재성은 곧 평범성이 되고, 극히 일부분만 천재성을 유지할 것이므로 천재들이 한 분야에 집중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천재성을 발견하는 것은 그 분야가 어떤 분야이건 간에 무척이나 힘들다.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짜 천재는 거의 없는 것은 진짜 천재를 만나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좀 잘 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천재이기보다는 범인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천재는 어떠한 경우에도 든든한 기초 위에서 진정한 위대성을 밖으로 뿜어내므로 예체능계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조기교육은 사실상 별로 필요가 없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숫자를 가르치고 복잡한 개념을 가르치는 것은 기초인성을 형성하고, 자연스러운 기본개념을 형성하는 것에 방해만 된다. 결국 극성인 학부모들의 자녀는 겉으로 보기에만 똑똑한 아이(한마디로 발랑까진 아이)로 성장하게 되고 성인이 되어가면서 아주 좁은 "사고의 틀"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실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참고로 대부분의 엄청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은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천재성을 나타낸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우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흔치 않은 경우다. (그는 3살 때 암산으로 아버지의 회계장부를 보면서 틀린 곳을 지적해주곤 했다고 한다.) 뉴턴은 비교적 조기에 천재성을 보인 경우이지만 그 나이도 중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결국 이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의 천재성은 초기에는 파악되지 않다가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일부러 천재성을 밖으로 뽑아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다른 어떤 글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천재성이란 자신의 재능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했을 경우 나타나는 것이다.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강제로 시키면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그냥 놔두면 사람의 대뇌작용이란 것이 하기 쉬운 것을 쫒아서 하게 되어있으므로 스스로의 재능을 쫒아서 하게 되어있다. 부모들이 다양한 환경을 접하게 해 주면 그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맞는 방향을 스스로 찾게 되어있다.
주의할 점은 천재들에게는 참 특이한 괴벽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괴벽을 만드는 일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직교좌표계를 만들어 뉴턴에 큰 영향을 끼친 데카르트는 늦잠이 많아 학교에 늦기 일쑤였고 성적도 안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나 선생님은 그의 그러한 면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p.35) 아인슈타인도 학교 다닐 때 그리 좋은 성적은 아니었고, 대학교 다닐 때도 수업을 듣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혼자서 책과 씨름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물리학 실험을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천재들에겐 범인이 이해하지 못할 괴벽이 많으니 진짜 천재를 키우고 싶다면 괴벽은 괴벽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물론 괴벽이 있는 아이들은 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많은 고충이 따르겠지만 이 고충은 부모와 선생님과 사회제도가 스스로 만든 것들이다.
- p.36을 읽다가...
무엇이든 최선을 다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최선을 다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열심히 갈고 닦는 사람만이 미래를 내다보고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갈고 닦은 후에 보이는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면 우리는 이런 것을 "열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열성적인 사람들과 비슷한 "극성"인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픈 것을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갈고 닦기보다 자신을 과감히 던진다. 간혹 이러한 도박에 성공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십중십은 실패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랜 지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자신을 투자하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한 달에 수십만 원~수백만 원짜리 과외를 10년간 지속시킬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수십만 원짜리 유치원에 보내고 수십만 원~수백만 원짜리 과외를 시킨다. 이러한 "극성"은 현재 세계적으로 '맞벌이' 형태로 나타난다. 맞벌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자녀양육을 고려하지 않은 맞벌이는 문제가 된다!!
극성의 폐해는 그 부모들에게만 결과를 보이지 않는다. 그 자손들도 삐뚤어진 인성과 시각을 갖게 됨으로서 무너지고 그에 더 나아가서 또다시 그 자손들도 그 영향을 받는다.
결국 앞뒤 안 가리는 "극성"은 "병적인 집착"과 같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실상 별로 없다. 그들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상업적인 희생양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구제하려면 정부의 시스템이 그들을 상업적 구렁텅이에서 끄집어내야 하는데 실제 정부의 정책도 이익집단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상업적 구렁텅이는 쉽게 약해지지 않는다.
자신이 극성인지 열성인지를 살피는 것이 자녀교육의 첫 단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어쩌면 열성과 극성의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 다른 면이 존재하고, 극성스런 모습과 열성적인 모습은 아이들의 내재된 잠재의식 속에 꾸준히 축적되어 갈 것이다.
이 축적된 모습은 결국 그 아이가 성인이 된 다음에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어쩌면 극성스럽게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을 직장인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열성적인 사람들을 극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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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기본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 교육의 현실은 기초보다는 응용에 맞춰져있지요.. -.-;
적성...
중요한것.
저희과에 들어온사람중 벌써 2학년인데 빠지는 사람이 생기고 있으니까요; (적성이 아니라;)